내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인 것
- f4strada
- 3월 1일
- 4분 분량
마이크 타이슨이 말했죠.
누구나 쳐맞기 전까진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맞습니다. 우리가 시골로 내려왔을 땐 제가 다시 서울로 출퇴근을 할거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렇게 많은 동물들과 함께 살거라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짝꿍이 다시 회사에 나갈거라는 계획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들은 계획가 반대로 흘러갔습니다. 저는 역삼역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고 우리집은 거의 동물보호소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짝꿍까지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짝꿍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어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찾아와서 그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 저는 변화의 크기를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주부터 저는 짝꿍과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짝꿍 출근 시간에 맞춰 저희집 출근시간이 당겨졌습니다. 짝꿍 출근 시간인 9시까지 회사에 도착하려면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퇴근을 하면 중간에서 짝꿍을 만나서 같이 오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 헬쓱하고 푸석한 얼굴이 되어버린 짝꿍의 모습을 보면 저는 입이 다물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피곤함에도 짝꿍은 일이 재미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은 더 딱딱해집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으로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 오면 집은 매일 엉망이 되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동물들이 집을 보기 때문입니다. 럭키는 집안 여기 저기에 오줌을 갈겨놓았고 잔디는 배변패드를 갈갈이 찢어놓았고 바닥엔 개털과 고양이털이 가득합니다. 퇴근하자마자 저는 이것들을 치우기 위해 매일 집 바닥을 물청소합니다. 매일 물청소를 하다보니 바닥을 닦기 위해 사용하는 휴지 양만해도 엄청나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이렇게 바닥 물청소를 하고나면 저는 세탁기를 돌립니다. 그리고 어제 말린 빨래를 접어서 옷장에 넣습니다. 그 다음에 밀린 설거지를 합니다. 설거지를 한 다음에 재활용 쓰래기도 정리하고 책상 정리나 아일랜드 식탁 위의 물건들을 정리합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비로소 저녁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이 쯤이면 아내는 이미 잠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혼자 저녁을 먹고 설거지합니다. 그리고 한 30분 정도 쇼파에 앉아서 동물들과 놀아주면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면 일어나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어 건조대에 널어놓습니다. 그리고 저는 30분 정도 숨을 돌린 다음 럭키에게 피하수액 120ml를 넣습니다. 그러면 이제 잘 시간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을 합니다.
그리고 다시 퇴근을 하고 돌아와서 외투도 벗지 못한 채로 마치 어제인지 오늘인지 모호한 기분으로 럭키가 싸놓은 호수같은 오줌을 닦기 위해 물청소를 시작하면서 저는 불행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불행이라니...
아내가 출근하기 시작한 다음 우리는 얼굴을 볼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출근할 때 비몽사몽 잠깐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아내는 바로 잠드니까요. 주말에도 아내는 출근하는 날이 많습니다. 덕분에 우리 이번 주말에 뭐할까 고민하는 일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12월 이후 우리는 럭키 피하수액을 놔야해서 1박 이상하는 여행도 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내의 주말 출근까지 겹쳐서 주말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차 구매 계획 같은 레저도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폴스타4를 살까? 테슬라 모델3를 살까? 아내와 함께 다음 차량 고민하는 것도 우리에게 즐거운 일이었습니다만 이것도 이제는 사치가 되었습니다. 매일 마당에 서 있을 차량을 굳이 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 집마저도 종일 비어있기 때문에 이 집의 존재 이유마저도 희석되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우리가 이 집을 만든 이유는 이 예쁜 집에서 우리가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는데 지금 우리는 이 집에 없는 겁니다. 게다가 이 빈 집이 현재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저의 퇴근 후 청소에 달렸습니다. 그래서 퇴근하고 고단한 몸으로 집안일을 하다보면 저는 난데없는 불행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불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내는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녀는 20대-30대에 훌륭한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그런 멋진 사람이 시골집에 갇혀서 매일매일 혼자 시간을 보내려면 괴로운 부분이 분명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금 상황은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요즘 취업난이라 가고 싶어도 직장을 못 가는 사람이 널린 세상에서 아내에게 먼저 와달라고 해주는 직장이 있고 그렇게 아내를 인정해주는 직장에서 지금까지 아내가 만들어온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를 저도 응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불행을 느끼는 지점을 반추해보면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기회"와 "지금까지의 생활" 간에 미스매치가 일어나서 그 가운데 저는 홀로 앓이를 하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라고 출근하는 삶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우리가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저의 전문성을 파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집의 대표로 내가 나를 팔아 아내와 우리동물자식들을 지탱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 나도 준비가 되면 아내와 강아지, 고양이들이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매일 출근길에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내일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을 때마다 묵묵히 일을 계속할 수 있었어요. 정말이지 때려치고 싶을 때마다 "내가 집에 있어도 될 그 날이 올 때까지 나는 이 길을 반복할 것이다"라고 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이 집에 돌아와도 아내가 이 집에 없다고 생각하니 저의 다짐은 모래처럼 결속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동기가 흔들리는 제 마음을 들여다 보면 어차피 내가 돌아와도 이 집에 짝꿍은 없고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짝꿍이 없는 집을 혼자 치우고 있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짝꿍이 취업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짝꿍을 응원하면서도 이 가정을 혼란스럽게 만든 원인 제공자로서 짝꿍을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마음은 편협해서 제가 집에 있고 아내가 출근해서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하는 것도 선택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아내를 보는 시간이 너무 짧고 아내의 힘들어하는 모습이 저 스스로를 비난하고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뻗어갔습니다. 그러니 럭키 오줌을 닦으면서도 빨래를 하면서도 제 마음은 저 멀리 어딘가로 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순간적이고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화를 표현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화 자체가 안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생각이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거든요. 저도 그렇습니다. 서운함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저를 오래 잡아두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감정은 정말 현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감정이 찰나의 느낌으로 사라질 수 있도록 글을 쓰면서 마음을 다스려 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저의 계획은 쳐맞기 전까지의 계획이라고 쿨하게 인정해야할 것 같아요. 이전의 계획은 현실에 쳐맞고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원망하기 보단 새로운 계획이 필요해졌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따로 또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시기이고 이 시기에 짝꿍이 원하는 짝꿍의 모습이 되어가는 과정을 응원하고 지원해야겠다 나는 이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라고 제 마음에게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 가르쳐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교회를 나가야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농담)
아. 힘듭니다. 내 마음을 내가 마음대로 하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하지만 해야죠. 그렇습니다. 그렇다구요. 암튼 요즘 그런 마음입니다.
Commentai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