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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전4기 판정 1개월 후기

  • 작성자 사진: f4strada
    f4strada
  • 1월 27일
  • 15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월 27일

어제 한달 만에 병원에 갔습니다. 검사결과는 럭키는 매우 좋아졌습니다.

병원에서도 놀랄만큼

짠하다. 할배

신장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하는 크레아틴 수치는 2.7까지 내려왔습니다. 2.7이면 신부전 2기에서 3기 정도로 보면 됩니다. 이것은 여전히 럭키는 하루 300ml의 수액을 공급받아야 신장이 정상동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행인 지점은 다른 모든 수치가 정상이고 럭키의 활력 역시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저는 저는 감사하게도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여러 개가 수주가 되어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럭키도 좋아졌고 저도 일이 많다보니 제 기억 속에서는 매일 오늘 밤 럭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연락을 받던 때가 언제인지 흐릿해졌고 면회실에 들어가서 주렁주렁 튜브를 몸에 달고 축 쳐진 럭키를 하염없이 쳐다보던 때가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어제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예전 그 감정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병원에서 아픈 강아지와 슬픈 보호자들을 보면서 24년 연말의 저를 리콜했습니다. 면회실을 나오면서 제가 느꼈던 구역질과 럭키 증상에 대해 하루 종일 챗GPT와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습니다. 아. 내가 이 이야기를 나중에 정확히 정리하기로 했는데 이제 편해졌다고 다 잊고 있네. 왜 나는 이렇게 간사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 글을 남겨 봅니다.


제가 이번에 럭키 신부전 치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것은 "의료시스템"이 아니다.

시스템(system)의 정의는 상호작용하는 여러 요소들이 모여서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거나 기능을 수행하는 복합적인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 개념을 연장시켜보면, 의료 시스템의 정의는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자원, 서비스, 기관, 기술, 정책 등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구조입니다. 이 시스템은 질병 예방, 치료, 재활,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며, 개별 환자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의 건강을 관리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의료 시스템의 주요 구성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의료 서비스 제공자: 의사, 간호사, 약사, 병원, 진료소 등 건강 관리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사람들과 기관들입니다.

  2. 정책 및 법규: 국가나 지역 정부는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 질, 비용 등을 규제하는 법과 정책을 마련합니다. 이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의 틀을 형성합니다.

  3. 건강 보험: 환자들이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로, 정부나 민간 보험회사를 통해 의료비를 지원합니다.

  4. 기술 및 장비: 의료 시스템에는 다양한 진단 및 치료 기술, 의료 기기, 전자 건강 기록(EHR) 시스템 등 기술적인 요소가 포함됩니다.

  5. 의료 자원: 병원, 의료 인프라, 약품, 의료 기기와 같은 물리적 자원들이 포함됩니다.

  6. 건강 정보 시스템: 환자의 건강 정보 및 데이터를 관리하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시스템적으로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입니다.

  7. 기타 지원 시스템: 약국, 응급 구조 서비스, 재활 센터, 건강 교육 및 예방 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원 서비스도 의료 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러한 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사람들에게 질병 예방, 진단, 치료, 재활, 건강 증진 서비스를 제공하며, 전체적으로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만 그것을 비로소 의료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경험한 것들은 어땠나?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과 의료자원, 건강 정보 시스템은 존재했습니다만 정책 및 법규, 건강보험, 기술 및 장비, 기타지원 시스템은 없었습니다. 즉, 동물 의료 시스템은 꼴랑 서비스 제공자와 약품 그리고 병원마다 분리되어 있는 낙후된 정보 시스템이 전부였습니다. 이것을 좀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해보면, 병원들마다 가계부 같은 프로그램을 하나씩 설치하고 환자 받아서 각자 관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1세기에 정말 놀랄 만큼 원시적인

왜 갑자기 저는 시스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제대로 된 시스템이 있었다면 럭키의 상태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 때문입니다.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냐고요? 참고로 저는 의사도 아닌데 지난 위기에 럭키 치료방법도 병원에 정확히 제안했었고 입원 중에도 대부분 수치 변화를 예상했고 이번 검사에서 낮아진 크레아틴 수치까지 정확하게 예상했습니다. 비록 제가 수의학 지식은 없지만 럭키의 치료과정을 연구 과정으로 치환해보면 시니어 연구자로서 어렵지 않게 답이 보이는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치료 과정이라는 것이 숫자를 보는 저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숫자를 제대로 보고 적절한 판단이 되었다면 럭키는 조기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럭키는 2개월 정도를 그야말로 개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 엉성한 시스템에서 럭키는 어떻게 점점 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는지 하나씩 이야기해볼 예정입니다.


 
  1. 모든 문제의 시작 : 동네 동물병원


병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이 갑자기 큰 병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살면서 한 번 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와 비슷하게 동물은 멀쩡하다가도 아프다는 신호가 나타나서 병원에 가보면 심각한 상황일 때가 흔한 일입니다. 럭키 역시 크게 문제가 없다가 처음 이상이 생겼던 것은 11월 초 주말이었습니다. 럭키가 밤에 갑자기 혈뇨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몸을 떨고 움직임이 둔해졌습니다. 놀란 저희 부부는 자주 가던 동네 병원을 찾았지요. 이 때 피검사하고 저희가 들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령견치고 수치가...이만하면 좋아요. 크레아틴 3.3 정도로 좀 높지만 이 나이에 이걸 높다고 하는게 좀 그렇죠. 오히려 염증수치가 쪼-끔 높으니까 항생제 써보고 한 달 뒤에 봅시다.

사실 그때만해도 저는 철썩같이 선생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 그런가보다. 안심해도 되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염증수치가 높으니 만병통치약인 "항생제"처방을 받아서 귀가했습니다. 이틀쯤 항생제를 먹고 나니 럭키는 제법 평소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2주 뒤에 럭키는 혈뇨와 구토를 하면서 완전히 고장났습니다. 럭키가 완전히 퍼진 그날 해당 병원에 전화해보니 제가 불신하는 나이 많은 선생님이 순환근무하시는 날이어서 저는 그 병원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다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피검사를 했고 그 병원에서 나온 이야기는 더 가관이었습니다.


피는 언제까지 뽑을꺼야!!
피는 언제까지 뽑을꺼야!!


크레아틴 5.5, BUN 80이면 신부전 4기 지금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치입니다. 음수량이 많았다면 저는 당뇨병이 의심이 됩니다.

제가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아들 정도 될 것 같은 어린 애가 수의사 가운을 입고 제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나이로 사람을 판단할 순 없지만 너무 젊은 수의사는 아무래도 불안감을 주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한 말은 현기증이 났습니다. 수의사는 제 불안한 눈빛을 감지했는지 인터넷 브라우져를 켜더니 미국 수의학회 웹사이트에 있는 신부전 카테고리를 보여주면서 봐요. 이 수치면 4기 맞죠?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찔했습니다만 정신차리고 물었습니다. 그래. 신부전은 알겠다. 그런데...

당뇨병은 또 무슨 이야기냐? 왜 그렇게 생각하냐?

의사는 럭키가 물을 많이 마시고 오줌을 많이 싼다는 건 당뇨병일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순간 저는 이 수의사와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이 되었습니다. 판단의 이유는 신부전은 피검사 결과로 이야기하고 당뇨는 현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맥락을 맞추는 화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수의사는 큰 병원으로 전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그렇게 럭키는 자연스럽게 분당에 있는 2차병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2차병원에 갔을 때부터 럭키는 이미 축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차 병원은 큰 병원답게 초음파와 피검사를 하고 자세히 상황 설명을 해줬습니다. 당시에 제가 들은 현재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럭키는 급성신부전 현재 크레아틴 4.8, BUN 120 심각한 수준. 그리고 초음파 결과 신장, 방광에 염증이 크게 있습니다. 알부민 수치는 수혈할지 말지 고민해야할 정도. 현재 피를 못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당장 입원 조치해야합니다.

왜 계속 말이 틀려!!!
왜 계속 말이 틀려!!!

듣자마다 솔직히 분노가 올라왔습니다. 내가 수의사 공부를 안했지 바보가 아닌데 이것들이 지금 나가지고 장난을 치나 싶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사람들이 수의사라니 공부를 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하는 나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 때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럭키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이 모두 이들의 무능처럼 원망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화가 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럭키는 이미 24년 여름부터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구취, 무기력, 긴 수면시간 등 여러 가지 경미한 전조증상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을 단순한 노화의 결과라고 생각한 제가 제 1 원인 제공자입니다.

  • 여기서부터 의료 시스템이라는 것이 동작해서 보호자의 무능을 시스템이 커버할 수 있었다면, 럭키 치료는 훨씬 쉽게 처리되었을 것입니다.


  • 하지만 첫번째 동네 병원은 애초에 치료 기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현상 = 혈뇨, 무기력

    • 조치 = 피검사

    • 결과 = 염증수치가 높음, 신장 수치 높음

    • 염증 수치가 높으면 항생제를 투여하면 된다는 치료 기술이 아닙니다.

    • 항생제를 먹고 나아지면 되고 안괜찮으면 한달 뒤에 보자는 것도 치료기술이 아닙니다.

    • 염증 수치가 높으면 왜 높은지 생각해봐야하는 것이고 저 같이 비의료인도 신장 수치가 높으면 신장에 문제가 있고 염증수치 역시 높으면 신장에 염증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의 흐름입니다.

    • 나아가 좀 더 연륜이 있는 의사라면 신장과 관련이 있는 다른 장기, 방광 같은 데에 문제가 있지는 않을 까 의심해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 과정일겁니다.

    • 그래서 처방이 항생제가 아니라 방광이나 신장을 살펴보는 것이 먼저겠습니다.

    • 상황이 어떤지 궁금하지도 않고 일단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 두번째 동네 병원 역시 치료 기술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 현상 = 혈뇨, 구토, 무기력

    • 조치 = 피검사

    • 결과 = 신장수치 높음. 당뇨의심

    •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음 다뇨는 당뇨의 대표적인 증상은 맞습니다만 신장수치가 높은데 당뇨가 나오는게 이상한 이야기죠. 심지어 제가 신부전 의심이 된다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아주 강하게 당뇨일 가능성이 높다는데 저도 짝꿍도 의아했습니다. 환자 앞에서 자존심이 왠말이고 이 빈약한 추론 능력은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었습니다.

    • 럭키의 당뇨병 여부는 결국 2차 병원에서 당뇨병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첫날 바로 결정되었습니다.

    • 이 병원은 측정만 하고 치료를 2차 병원으로 바로 넘겼으니 결과적으로 아무런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아마 두번째 동네 병원에 처음부터 갔었어도 장님 문고리 잡는 것처럼 당뇨병 치료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 동물의료 시스템에서 가장 하부에 존재하는 서비스 프로바이더인 동네병원은 실질적으로 오진을 거듭했을 뿐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 그리고 2차 병원에 가서 확인한 측정결과를 보고 저는 기겁을 했습니다. 연구자로 오래 살아온 저는 병원 장비의 측정결과의 편차가 이렇게 클 거라고는 감히 생각도 못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 이 시스템(?)에서 치료 기술이라는 요소가 보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한 증거입니다.

    • 의료 장비로 측정을 했는데 크레아틴 수치 3.3 / 5.5 / 4.8 은 말도 안되는 편차입니다.

    • 럭키를 봐주신 2차 병원이 국내에서 장비가 제일 최신이라고 알려진 병원이니 아마도 마지막 병원의 측정결과가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은 하고 있습니다.

    • 게다가 병원마다 측정치 공유가 안되서 이전 병원에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환자가 더듬거리며 말하는 내용 + 현재 상황을 가지고 치료를 각 병원에서 알아서 하는 것을 저는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11월 초에 첫번째 동네 병원에서 정상적인 판단을 했다면 럭키의 신장 수치가 5.29 알부민 수치 1.7 까지 몰려서 럭키가 생사를 넘나들지 않아도 되었을 겁니다. 검사에서 반드시 뭔가 걸려 나왔을 것이고 그걸 잡았더라면 지금 신장상태 2.7보다 훨씬 좋은 상태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럭키 신장수치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럭키는 2차 병원 입원 후에도 크레아틴 수치가 5.29까지 올라갔다가 3.5까지도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의학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크레아틴 수치가 한 번 올라가면 다시는 내려올 수 없는 수치가 아니라 변화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가는 병원마다, 심지어 2차병원에서까지도 럭키의 크레아틴 수치를 보고 럭키 신장은 이미 75% 이상 박살난 상태이며 되돌리기 어렵다라고 했을까?

사실 이건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신장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는 세간에 잘 알려진 의학 지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장 건강 = 크레아틴 수치라고 생각한다면 누군가에게 신장은 회복이 안되니 크레아틴 수치도 회복이 안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일반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의사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심지어 의사는 라이센스 직업입니다. 저처럼 그냥 대학교 졸업하면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 겁니다. 어떻게 의사가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크레아틴 수치가 비가역적이라면 럭키는 기적을 만든 정말 럭키한 강아지겠습니다. 하지만 수치변화를 보면 저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당연히 맞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돌이나 금속과 달리 생명체가 변화하는 것은 대부분 어떤 시간적 버퍼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중간 상태가 있고 그 중간 상태에서 가해지는 외부자극에 따라 여러 갈래로 변화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암에 걸리면 바로 죽는거 아니잖아요. 치유되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하고 정체하기도 하고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합니다. 당연히 세포라는 건 끊임없이 수복하고 사멸하고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전문가로서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았습니다. 물론 보호자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들으면 그럴 싸하지만 신장이라는 장기가 크레아틴과 동격이 아닌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하아...글을 쓰면서도 계속 화가 나네요.


안좋아질거라매!!! 좋아졌잖아!!!!
안좋아질거라매!!! 좋아졌잖아!!!!

 

또다른 문제의 시작 : 2차 동물병원


2차 동물 병원 시스템은 동네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시설과 겉으로 보기에 나이스한 프로토콜을 가지고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큰 실망을 안겨줬습니다. 역시 이 곳에도 치료기술이라고 부를 만한 그 무언가가 부족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먼저 2차 동물병원에서의 치료 과정부터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11월 24일 럭키 입원 첫 날. 2차 동물병원은 럭키 혈액 검사에서 염증 관련 부분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결과를 보면 럭키의 체액 불균형을 알아내는데에 촛점을 맞춘 것 같습니다. 25일에도 마찬가지로 염증 관련 부분을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5일이 되어서야 병원에서 염증 반응을 살피는데 이 시점에는 당연히 럭키의 염증 수치가 작살이 나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제가 2차 병원으로부터 들은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장 처방식을 먹인 후에 럭키가 갑자기 상태가 안좋아졌어요. 신장 처방식이 단백질 함량이 적기 때문에 영양균형을 맞추기 위해 대신 지방 함량이 좀 높은데요 지방함량이 높다보니까 이게 췌장에 부담을 줘서 문제가 생겼나봐요. 지금 럭키상태는 급상 췌장염이 왔습니다.

그 날은 어질 어질 했습니다. 신부전 좋아지라고 병원에 갔는데 이번엔 췌장염이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거듭되는 모순된 말에 순간 마음속에서 또다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아니. 지방 함량이 높으면 췌장염이 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하지 않고 치료를 하나? 대체 당신들의 치료 전략이 어떻게 되냐?

당시에 "치료 전략"이라는 말을 듣고 수의사는 얼굴이 굳었습니다. 제 기준에서 프로라면 사실 어떤 프로젝트이건 전략을 제대로 세우고 실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수의사에게는 그것이 부재 중인 것처럼 느껴졌고 제 말이 그들의 치부를 찌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럭키 피검사 차트를 다운받아 천천히 살펴보니 제가 정곡을 찌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처방식을 먹여서 럭키가 췌장염에 걸렸다는 말은 그대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분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었습니다. 현상적으로 럭키가 췌장염 증상이 나타난 것이고 공교롭게도 처방식을 바꿨더니 그렇게 되었더라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럭키가 병원에서 처방 사료를 먹고 췌장염이 왔다는 사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습니다.


밥 먹고 바로 똥나오냐! 똥도 시간이 걸리는데!!!
밥 먹고 바로 똥나오냐! 똥도 시간이 걸리는데!!!

컴퓨터 전원버튼 켜는 것도 아니고 사료를 먹자 마자 췌장에 문제가 생긴다고? 이게 정상인가?

그러다가 최근에 럭키 차트를 보고 알았는데 럭키는 처음부터 염증 수치 체크를 하지 않았습니다. 즉 럭키가 입원했을 때 췌장염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들은 몰랐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그들이 첫 진료에서 이야기한 "초음파를 보면 신장과 방광에 염증이 보인다"말이 생각이 났습니다.


뭐? 염증이 초음파로 보였는데 피검사로 확인을 안했어?

대체 뭐가 먼저 아픈거야!
대체 뭐가 먼저 아픈거야!

제가 거듭 이야기하지만 의료에는 문외한이지만 15년 이상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건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수로 어떤 요소를 측정을 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그 요소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 그 문제가 발생했는지 원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합니다. 그런데 고객은 해당 문제에 대해 정확한 원인을 알고 싶어하는 상황은 꽤 흔한 사고입니다. 딱 지금 이 상황이지요.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그런 사고가 생기면 주로 처리하는 방식이 정보 격차를 이용해서 고객에게 가장 그럴 싸한 이유를 둘러대는 것입니다. 애초에 염증이 있는지 몰라서 잘못된 치료를 했다고 하는 것보다는 치료를 제대로 하고 있었는데 사료의 특성때문에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고객을 달래기 쉬운 대응일 테니까요. 어차피 이 부분은 확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저는 이렇게 유추하고 있으며 제 추론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어떤 상황이던 치료전략이 부실 또는 부재했음은 사실입니다.


이 시점부터 저는 2차 병원마저 불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들은 지금 럭키의 문제점을 정확히 판단할 수 없고
현재 가능한 수단을 사용해보고 피드백을 보면서 다음 수단을 강구하고 있구나

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다음과 같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요구했습니다.


첫 번째, 절대 급격한 변화를 주지 말 것. 사료를 바꾸던 약을 바꾸던 서서히 변화시킬 것
두 번째, 변화량을 자주 체크할 것. 럭키는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변곡점을 빠르게 찾는 게 관리 관점에서 중요.

그리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제가 직접 치료전략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챗GPT를 켜고 매일 럭키의 상태에 대해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챗GPT는 의사만큼이나 의료 지식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저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상관관계를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챗GPT와의 논의 끝에 얻어진 결과는,


럭키는 염증수치가 높아서 신장수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 즉 염증수치를 내리면 신장수치가 떨어질 것이다.

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염증 수치를 낮추는 데에 초점을 맞춰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난스럽게도 저는 병원에 제가 챗GPT와 한 대화를 공유했습니다. 저도 그런 제가 싫었지만 럭키가 매일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상황에서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혹시나 제가 드린 자료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럭키가 살아난다면 저는 진상소리를 들어도 아무 상관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집니다. 수요일 면회를 다녀온 아내가 울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오빠 럭키 등 봤어? 등에 혹부리 영감처럼 혹이 생겼어. 이 사람들이 럭키 다 망가뜨리는 거 같아. ㅜㅜ

다음 번 면회갈 때 제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 면회 때에는 아내는 산부인과에 가야해서 저 혼자 면회를 갔습니다. 럭키 등을 만져보니 등이 정말 어린 아이 주먹만큼 피부가 올라와 있었고 그 촉감은 절대 물이 차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렁하다기 보단 딱딱함에 가까웠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일단 아내에게 좀 더 지켜보자 했습니다.


지금은 염증 치료가 급한 상태이다. 그러니까 등에 항생제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주사를 맞고 있으니 일시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 괜찮아질거야. 병원을 믿고 기다리자.

라고 아내를 달랬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참지 못했습니다. 시각적으로 럭키를 보는 게 처참했거든요. 그래서 다음 면회 가서 수의사에게 럭키 등에 혹있는거 보셨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수의사의 대답이 가관이었습니다.


네? 혹이요?

수의사는 럭키 등에 있는 혹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매일 주사를 놓는다며! 정성으로 보살핀다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혹이 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있어. 하아. 주사를 놓으려고 만지는 순간 이상한 것을 알아차릴 법도 한데 그걸 모르다니 이 시점에서 저희 부부는 쇼크받았습니다.


매일 만져본다며!!!!
매일 만져본다며!!!!

그러면서도 혹시나 럭키한테 나쁘게 하실까봐 혹 잘 치료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어요.


약이 들어가면서 뭉칠 수도 있어요. 저희가 마사지 해줘서 최대한 풀어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거에요.

그렇게 럭키는 매일 등에 주사를 놓고 마사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전보다 혹이 좀 말랑해지고 작아지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등은 불룩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흘러 점점 럭키의 췌장염이 잡혀가는데도 신장 수치는 꿈쩍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가설에서는 염증이 계속 되면 신장도 계속 나빠질 것이라 이런 상황이 초조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을 하다보니 이상했던 점이 염증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췌장염이 잡히고 있는데 왜 전체 염증 수치는 그대로일까? 그렇게 계속 생각하다보니 순간 제 뇌리를 스치는 것이...


아. 등에 있는 저 혹이...만약 고름이라면...

그래서 바로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도 동의하셨는지 럭키 등을 좀 째도 되겠냐며 보호자 동의를 구했습니다. 저는 1초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얼마든지 째세요. 저는 최대한 빨리 그 고름을 제거해야한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 면회에서 선생님이 등을 쨀 때 영상을 직접 저희에게 보여줬습니다. 럭키가 너무 잘 참는다니...농이 이렇게 콸콸 잘 나왔다니...피고름이 흐르는 스마트폰 영상을 보시면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저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이런 의료 서비스에 의지해야하는 제 자신이 처참했습니다.


저거 전부 피고름이잖아...저렇게 농이 차 있으니 염증수치가 떨어질 리가 없지. 인간이었으면 열이 40도는 되었겠다...
내가 말하기 전에 당신들이 먼저 피고름 짜고 염증 체크했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또 계속 등 마사지나 하고 있었을거잖아.

말못하는 짐승이라 그렇지 얼마나 아팠을까!!!
말못하는 짐승이라 그렇지 얼마나 아팠을까!!!

마음 속으로 많은 아쉬움을 삼켰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상담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후 결과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뻔했습니다. .


마치 고문당한 것 같은...
마치 고문당한 것 같은...

등에 피고름을 짜고 나니 거짓말처럼 염증 수치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제 가설처럼 염증 수치가 떨어지니 신장수치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 왔을 때 저는 이미 확신을 했습니다. 럭키는 이제 회복하겠다. 다만 보통 추세를 판단할 때 적어도 세 포인트는 봐야하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 번 수치가 개선되면 이것은 계속 감소하는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렇게 이틀 뒤 럭키는 퇴원을 하게 되었죠.


2차병원의 오진은 동네병원에서의 오진과는 또 다른 형태의 오진이었습니다. 이 또한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구성원 모두 최하 석사 학위 소지자인데 이런 문제해결능력으로 논문을 어떻게 썼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당 수의사 선생님 말고 중간에 봐주신 분 중에 대화가 많이 답답하신 분이 계셔서 그 분에게는,


선생님도 석사 논문 쓰셨을 거 아니에요? 가설 검증 하실 때 어떻게 인자를 통제하셨나요?

라고 살짝 선 넘은 질문을 하기까지도 했습니다. 불행히도 그 선생님은 제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하셨습니다. 이 쯤에서 수의학에 대한 저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아마도 제가 30대였으면 그 분 논문을 찾아서 마이크로 리뷰했을 겁니다만 이제 저도 좋은게 좋은거란 마음으로 살고 있어서 그냥 실망만 하고 말았습니다.


치료의 목적과 목표가 뭐냐고!!!
치료의 목적과 목표가 뭐냐고!!!

최종적으로 이 오진 오케스트라의 결말은 돈이었습니다. 잘못된 치료 역시 모두 보호자가 비용을 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용 문제에 대해 치료 과정에 대해 객관적으로 따질 마음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병원 측에서 이런 제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퇴원 며칠 전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먼저 치료비 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냥 병원 제안대로 받아들여서 할인을 받았습니다.


물론 돈의 크기는 중요합니다. 그래서 할인을 받아 부담이 적어진 것은 결과적으로 합리를 추구한 것 맞습니다. 하지만 돈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납득 가능한 비용'입니다. 럭키가 처음 2차병원에 왔을 때 그들은 염증 체크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럭키 치료과정에서 염증 관련 문제가 생기고 제가 병원 치료 과정에 디테일하게 관여하기 시작하자 여러가지 검사들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루에 35만원이던 치료비는 순식간에 70만원을 넘겼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통 처음 입원을 하면 검사를 많이 해서 상황 파악을 정확히 하고 이후 치료 전략을 짜는 것이 상식일텐데 보호자가 지랄하면 검사 항목이 촘촘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검사가 구멍이 있다는 것이 저는 말이 안된다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정확하게 측정하면 오진의 가능성도 낮아지고 오진의 가능성이 줄어들면 전체 치료비가 줄어들어서 치료비 부담이 줄어들 확률이 클거라 저는 예상해봅니다. 동시에 치료의 최적화가 되면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료진까지 고생하는 양과 시간도 필연적으로 감소하니까 전체 병원 수익은 올라갈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삽질을 하고 있는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삽질을 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반대 의견을 생각해보면,


  • 당연히 어떤 보호자는 왜 이렇게 치료비가 많이 나오냐고 클레임하기도 하겠죠. 돈없으면 치료도 못받는다고 병원을 비난하는 보호자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병원이 이런 마찰이 두려워서 처음부터 검사를 축소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안하는 것과 같습니다.

  • 예상 가능한 또 다른 반론은 어떻게 처음부터 필요한 검사를 정의하고 처음부터 다 하냐? 그런 식이라면 결국 가능한 모든 검사를 해야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사기꾼입니다. 처음에 검사 스코프를 정의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에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비용을 주고 맡기는 것입니다. 이게 어려우면 그만해야 합니다.


비용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면, (제가 알기론) 현재 한국에서 반려동물 보험은 활성화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의료 수가 측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료 수가 측정과 관련해서 제가 경험한 바로는 치료법에 대한 거버넌스가 없다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럭키 치료 사례만 보더라도 이것은 보험회사에서 납득할만한 치료과정이 될 수 없습니다. 보험회사에서 납득하려면 치료과정의 프로토콜이 정규화되고 예측가능한 수준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최소 입원 시 해야하는 검사 항목부터 제 멋대로인 치료를 어떻게 보험제도가 품을 수 있을까요? 할 수 없겠죠. 그러니 보험 상품도 설계할 수 없을 것이 당연합니다. 이 역시 반려동물 의료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간접적인 반증이 되겠습니다. 럭키는 10일 입원하고 약 5X0만원 정도 치료비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한번 내원할 때마다 40만원씩 검사비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이 비용이 많다 적다를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비용에서 과연 럭키의 치료에 직접적인 비용이 얼마였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비율이 크면 비용 전체가 커도 대부분 보호자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용을 제외한 비용이 높으면 높을 수록 보호자들은 의료 서비스에 불만족하고 심한 경우 속았다는 느낌까지 받을 것입니다.


해외여행가서 바가지 택시 타는 느낌이야
해외여행가서 바가지 택시 타는 느낌이야

나아가 제가 46살 먹을 때까지 다양한 멍청이들을 보았습니다. 제 기억 속에 하버드 멍청이가 1명 있었는데 진짜 바보였고 그 밖에 수많은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출신 멍청이들을 보아왔습니다. 연고대까지 합치면 셀 수도 없을 만큼 멍청한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직장으로 생각해보면 삼성, LG, 네이버는 물론 실리콘 밸리 출신 현업자들도 프로젝트를 수행할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보다는 말로 거짓말만 하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적어도 50%가 넘는 인증된 사람들이 그들의 스펙보다 거품 실력이었다는 것이죠. 반면에 내세울 만한 변변한 스펙은 없지만 너무나 똑똑하고 존경스러운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일을 잘 수행하는 데에는 스펙보다는 실제 실력입니다. 그렇다보니 나이 먹고 제가 믿는 것은 인간이 달고 있는 계급장이 아니고 진짜 사격 실력이 되었습니다. 그런 성향의 인간인 저는 타인의 사격 실력을 체크하는데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사건에서도 방향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만 럭키 치료 과정을 통해 이 동물 의료 시스템에서는 그 어느 것도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글을 읽는 분들 중에 비슷한 일을 겪으시고 공감하시는 부분이 꽤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얻은 몇 가지 교훈을 공유합니다.


  • 개, 고양이의 장기에 관련된 치료는 여러 군데 병원에서 가셔서 비교/확인하세요. 동물의 내부 장기 관련 치료는 절대 쉽지 않습니다.

  • 치료 차트는 꼭 공유받으시고 치료 과정에서 발생한 대화나 사건도 메모하세요. 그리고 메모한 내용을 꼭 챗GPT에게 공유하고 다음 질문을 하세요. (챗GPT는 유료 버전 추천합니다)

    •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나에게 설명해봐

    • 원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봐

    • 해결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봐

    • 비슷한 사례를 검색해봐

  • 같은 오진이어도 2차병원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장비가 좋기 때문입니다.

  • 동네 병원이건 2차 병원이건 어린 의사는 경험의 부재, 나이 많은 의사는 실력의 부재를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어쩌면 수의학에서 휴먼 에러 부분이 가장 큰 허들일 수 있습니다.

  • 병원에 가셔서 주변 분들과 스몰토크를 적극적으로 하세요. 그들에게 얻는 정보가 진실에 가깝습니다. 특히 가장 진료 잘 보시는 분을 물어보고 여차하면 해당 선생님으로 주치의 변경을 요구하세요.


여기까지는 완벽히 보호자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끝으로 보호자 입장이 아니라 인간 하상범 입장을 밝히면서 럭키 치료 후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럭키 입원 10일 내내 제가 가까이에서 본 수의사들은 절대로 쉬운 직업 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헝클어진 머리, 오물이 묻은 옷, 주말에도 근무하고 야간 당직까지 서면서 저같은 깐깐한 보호자에게 매일 같이 시달리는 모습이 이 일은 강한 동기부여 또는 사명감없이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럭키를 진료한 그 어떤 선생님들도 악의를 가지거나 도덕적 해이를 통해 치료를 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본 2차 병원 내부 입원실은 의료진에 비해 너무 많은 중환자 동물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렇게 빡빡하게 들어차 있었구나

아...위급한 애들이 너무 많아...
아...위급한 애들이 너무 많아...

'2차 병원'을 하나의 사업체로 보면 비싼 임대료는 기본이고 병원 가득한 장비의 리스 / 구매비용과 20명이 넘는 선생님들의 연봉을 감당하면서 영업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정도 밀도의 동물 환자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반대로 럭키 한 마리라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우수한 수의사 선생님들께서 하루에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할애해야 할 것이란 것도 쉽게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즉, 제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환자 한마리 한마리 전부 예측 가능한 치료 전략을 세우고 각각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변인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진행하기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밤낮으로 동물을 돌보는데 그들이라고 살리고 싶지 아니할까? 그들이라고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아니할까?

아...고생이 많으시구나...
아...고생이 많으시구나...

정말 제 예상이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감정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제가 경험한 무능의 반복은 어쩌면 이 환경 하에서 의료진이 의료진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지금의 저는 수의사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공감하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저는 병원을 초토화시켰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치료 과정에서의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상당 부분 해소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수의사 개인들과 보호자는 팀을 이루어서 환자를 너무나 잘 살려냈고 그 과정에서 그들도 그들 나름의 최선과 진심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들이 스스로를 희생해야지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각자 도생이라고 부르고 보통 각자도생의 원인은 시스템의 부재라고들 말합니다.


대한민국에 반려동물 의료 시스템은 없습니다.

단지 반려동물 의료인과 의료장비, 약품이 있을 뿐입니다.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의료인도,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 힘든 상황인 것이죠.


아...아수라장이구나...
아...아수라장이구나...

제가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 현재 반려동물 의료는 수의사의 책임 의료가 어렵습니다. 어쩔 수 없이 보호자가 상당 부분 결과에 책임을 가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을 공유하고 저보다 더 이른 시점에 더 좋은 판단을 하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또 저 스스로도 럭키가 어떻게 위기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를 정리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다음 번에 이런 위기를 맞았을때는 저도 좀 더 지혜로울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저희집엔 럭키 (15), 체셔(8), 왕왕이(4), 잔디(4) 줄줄이 대기하고 있거든요. 분명 다시 맞이할 예견된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행복하자
일단 행복하자

올해 크리스마스까지 건강하게 가보자. 럭키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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