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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보우 이야기입니다

  • 작성자 사진: f4strada
    f4strada
  • 1월 10일
  • 8분 분량

2024년 12월 9일 오후10시 11분에 쓴 글입니다


11월 21일 아내의 39살 생일입니다. 그 동안 저와 함께 사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연말 런던 여행을 생각했습니다. 좋은 숙소도 잡았고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는 엘보우라는 더 큰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엘보우를 환영하기 위해 영국 여행도 모두 취소했습니다. 위약금이 상당해서 아내는 가고 싶다고 했지만 여행은 임신과 비교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거짓말처럼 타고 다니던 자동차가 멈췄고 럭키가 중환자실로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산부인과에서도 엘보우에게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얼마 뒤 럭키는 병원에서 죽냐 사냐를 이야기하고 있게 되었고 그 동안 저희는 엘보우를 떠나 보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무엇에 홀린듯이 저희 집에서는 많은 일들이 몰아 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자동차도 럭키도 살아났습니다. 저희도 일상을 되찾았고 저도 정신을 좀 차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얼마 전 많은 분들이 엘보우에게 축하를 주셔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엘보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8년차 연애 중인 저희 부부는 딩크족은 아닙니다만 평소 아이에 대해 큰 생각이 없었습니다. 개인이 스스로 행복하지 못 하면 개인을 벗어난 그 무엇과도 행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서 조바심 내지 않으며 양립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저는 욕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도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일을 하느라 아이를 가지는 시기가 늦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는 삶이 주어질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반드시 있어야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너무 나이가 많지 않나? 무리해서 아이를 낳지는 말자. 시험관 아이하면 여자한테 무리가 많이 간대…

아내에게 손상을 주면서까지 아이와 교환하고 싶은 마음은 단 0.1%도 없었기 때문에 병원에서 시험관 아기를 제안했을 때에도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과배란 주사를 맞는 아내를 생각하면 제 기준에서는 불가능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자연임신이 된 겁니다. 정말 아주 작은 기대도 없었기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늦은 만큼 온 가족들도 기뻐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인스타에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주셨어요. (그렇게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쁨도 잠시 6주 차 산부인과 정기검진에서 나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혈액검사 수치는 매우 높은 데 초음파로 보이는 태아의 모습은 흐릿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생물 시간에 배운 감수분열을 생각하면서 늦은 나이에 임신이니 당연히 유산이란 결과는 있을 수 있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 표정은 단순한 일반 유산을 말씀하는 것보다 훨씬 어두우셨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현재 엘보우의 상태는 비정상임신으로 분류되며 그 중에서도 특이 상황이라 현재 진료로는 산모의 상태를 정확하게 말해 줄 순 없으며 정확한 상태는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아야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는 말랑이가 항암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분당 제일여성병원에서 이 수술을 하는 것이 걱정이 되면 (믿음이 안가면) 암세포 발견 시 타과 연계 치료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는 대형 종합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암세포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태아의 상태가 뭐가 되었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허말랑의 건강이며 허말랑의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 세포의 종류가 아니라 세포 분열속도이고 임신수치를 낮추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솔직히 수술 당일까지는 제 마음은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아. 임신이 쉽지 않구나. 그래. 나에게만 쉬울리가 없지

그런 생각으로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술 당일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수술 전에 병원에서 수술 안내를 받았습니다.


원래는 출혈이 많은 수술은 아니지만 만약 상황이 항암을 해야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출혈이 심할 수 있습니다.

벌써 이야기가 불길했습니다. 원래 출혈이 많은 수술이 아닌데 출혈이 많으면 항암을 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머리속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돌았어요.


아. 암세포면 조직 깊히 그리고 경계가 모호하게 들어가 있을 것이니 선제적으로 광범위하게 제거를 하겠구나. 그러니까 출혈이 심하겠지.

뭐든 많이 알면 잘 대응할 수 있지만 동시에 걱정도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아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있으려고 했는데 마음은 점점 타들어 갔습니다.

아내는 수술 전 근육을 이완시키는 필요한 주사를 맞고 심전도, 엑스레이 촬영을 했습니다. 주사를 맞은 아내의 몸상태는 급속도로 변했습니다. 한기를 느끼고 구토가 시작되었습니다. 매우 힘들어했어요. 덜덜덜 떨면서 비틀거렸습니다. 너무 안쓰러웠지만 옆에서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더욱더 타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아내가 수술하던 날은 럭키의 상태가 매우 위중할 때였습니다. 아내도 분당에 있는 병원이었고 럭키도 분당에 있는 병원이었습니다. 아내가 검사가 끝난 다음 아내 수술시간까지 대기시간은 2시간 정도 남았고 산부인과에서 동물병원까지 15분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럭키 걱정을 했습니다.


오빠...럭..키 보고와아...

저는 수술 끝나고 집에 말랑이 데려도 주고 저녁에 다시 럭키 면회를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허말랑은 같은 일을 두 번하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본인이 아픈데에도 끝까지 저에게 럭키 상태를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가 한참 예민한 시기였습니다. 럭키의 상태는 너무 악화되고 있고 동물병원과는 마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저는 럭키 면회를 갔다가 아내가 있는 병원으로 수술 전까지 다시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이번 겨울 최대 폭설이었습니다
이번 겨울 최대 폭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날은 첫 눈이 미친듯이 오던 날이었습니다. 제가 출발할때만 해도 눈은 살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말랑이한테는 2시까지 병원에 가기로 했는데 도로 상황은 극도로 나빠졌고 교통은 마비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저희 집 경차, 허파크는 힘도 없고 자세제어도 안되어서 그런 눈덮힌 도로를 빠르게 갈 수 없었습니다. 원래 타던 차가 고장나지 않았다면 이런 돌발 상황에서도 훨씬 빨리 복귀할 수 있었을 텐데 모든 상황이 야속하고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눈 속에서 핸들을 잡고 산부인과로 가는데 여기서 나까지 사고가 나면 정말 최악이라는 생각으로 분노를 누르면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산부인과에 도착하니 사람들은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었고 온세상은 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발렛을 맡기려는 차량이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5분이나 늦었기 때문에 발렛 주차를 기다릴 새가 없었어요. 그래서 옆 건물 CGV 주차장으로 직접 운전을 해서 들어갔습니다. 눈이 많이 왔기 때문에 CGV 주차장 안도 전부 만차였습니다.


아. 진짜 다 죽여버리고 싶다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났습니다. 왜 하필 오늘 눈이 오고 왜 하필 오늘 차가 없고 왜 하필 오늘 럭키가 아프고 왜 하필 오늘 주차장은 만차인가 신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건가 싶었습니다. 오늘 같이 눈오는 날 왜 영화관에 차를 끌고 와서 자리를 없게 만들지?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그 어디에든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습니다. 나는 미친듯이 노력하는데 그 어떤 것 하나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벌써 시계는 10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법을 지키는 내가 문제인가?
그냥 도로에 아무데나 차를 던져놓고 올 껄 그랬나?
아내가 중요하지 지금 교통법이 중요한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CGV 아무데나 차를 대고 저는 뛰어 내려왔습니다. 미친듯이 건너편 산부인과로 뛰어가는데 편의점을 지나치면서 아내가 레모네이드를 사달라고 한 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중에 붕 떴습니다. 눈길에 미끄러진 겁니다. 공중에 붕 뜨는 순간 여기서 넘어지거나 다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몸을 뒤틀어서 착지를 했습니다. 제대로 넘어져서 다치는 일은 막았지만 온 몸의 근육이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라서 통증이 계속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계속 가고 있어서 저는 그대로 편의점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쥬스를 모두 담아서 가방에 넣고 다시 산부인과로 뛰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넘어지면 걸어서 병원에 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목, 등과 허리 그리고 허벅지 근육 모두 아팠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조심 타조처럼 빠르게 뛰어서 산부인과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저는 2시 15분에 병원에 도착했고 아내는 이미 수술실에 들어간 후였습니다. 오한에 벌벌 떨던 아내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덜덜 떨면서 수술실에 혼자 들어갔을 아내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착잡했습니다. 내가 CGV에 차를 대지 않았다면 괜찮았을텐데…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내가 수술실 안에서 불안해 할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수술실 문 안쪽으로 저는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수술실로 들어가는 병원 관계자를 잡고선 허말랑에게 제가 왔다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진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진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수술실 앞에 앉아있던 2시간은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앉은 벤치 정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에는 수술실, 왼쪽에는 신생아실이 있었습니다. 마치 수술실 앞에는 어둠이, 신생아실 앞에는 빛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생아실 문이 열리면 정말 인형만한 작은 아기를 투명한 카트에 담아서 행복한 얼굴로 걸어가는 부부들이 나오고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빛나는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반대로 수술실 앞에는 환자의 부모 또는 친구, 남편들이 초조한 얼굴로 앉아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의 공간에 마치 흑과 백의 바둑알이 놓여있는 바둑판처럼 고대비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앉아있는 자리를 기점으로 초월적인 기쁨과 실패와 절망이 약 10m 거리에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신생아실 사람들을 볼 때는 제 얼굴을 그 사람들의 얼굴에 대입해보았습니다. 우리가 저 사람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30cm가 될까말까한 플라스틱 인형같이 작은 아기를 보기만해도 저도 행복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행복감을 느끼다가 반대편 수술실 자동문이 열리면 어떤 때에는 의료용 침대에 주렁주렁 줄을 달고 사람이 누워서 나왔고 어떤 때에는 비틀거리며 인상을 쓰며 수술을 마친 환자가 걸어 나왔고 어떤 때에는 웃으면서 나온 환자와 가족이 쓴 웃음을 지으며 포옹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이번에 나오는 사람이 허말랑일까? 허말랑은 어떤 상태일까? 걸오서 나오나? 누워서 나오나? 저는 일어나서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2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왜 이렇게 안나오지 인내심이 바닥이 날 때쯤 의사 선생님이 제게 다가오셨습니다.


보호자님, 일단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출혈도 거의 없고요. 조직도 깔끔하게 떨어졌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정확한 결과를 위해 조직검사 보내서 다음 주에 다시 결과 봅시다. 이제 허말랑님은 안정 취하시고 나오실 거에요.

무신론자이지만 전 이럴 때마다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앉아서 조금 더 기다렸더니 오후 4시 쯤 허말랑은 편안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없이 껴안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말했습니다.


오빠 얼굴이 왜 이렇게 시커매

수술은 아내가 했지만 저도 그 시간이 고강도 스트레스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허말랑이 아무 일 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했습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저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아내가 중요했기 때문에 엘보우에 대한 아쉬움은 그 당시에는 생각할 겨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내 수술 후 며칠이 지나고 아내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을 때마저도 저희는 럭키를 치료하느라 엘보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큰 행복을 주었던 엘보우의 존재는 일순간에 완전히 잊혀진 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평소처럼 럭키 면회를 다녀와서 밤에 쇼파에 누워 유튜브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임신, 반려동물과 전혀 상관없는 광고 영상을 보았는데…저도 아내도 눈물이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눈과 제 눈이 마주치고 우리는 서로 안고 펑펑 울었어요.


광고가 미쳤습니다

나는 왜 우는 것일까?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저미는 것일까? 나는 엘보우를 본 적도 없고 느껴본 적도 없는데…

우리에게 뭔가 왔었고 남자인 저는 그 존재를 저는 물리적으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전의 저와 뭔가 달라져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저는 이 질문 자체를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가족이란 나에게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있었고 단 한번도 없을 거라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인생의 상수 같은 개념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의 멤버가 예전엔 부모님이었고 지금은 허말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별개로 '나'는 '나'이며 '내'가 '내 일'을 하고 '내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는 단 한 번도 의심이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희생이라는 개념이 흐릿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엘보우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찾아온 다음 저는 가족이라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가족은 내가 지켜야할 대상이고 내가 기꺼이 희생해야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내를 위해서도 저는 기꺼이 희생하고 아내를 지켜야 하지만 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존재를 만들었다는 것은 저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존재 엘보우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그 작은 존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마음이 슬픔으로 변한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어. 엘보우
만나서 반가웠어. 엘보우

그 후로도 계속 슬픔이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우울이라는 감정이겠죠. 일하다가도 갑자기, 말랑이랑 티비보다가도, 지하철에서 문득 건너편 유리에 비친 나를 봤을 때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누군가가 아프다는 말을 듣거나 누가 슬픈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면 제 일처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지나가는 행인들이 안고 가는 아기들을 보면 참 예쁘게 보였습니다.


만약 우리 엘보우는 잘 자랐다면 어떤 아이였을까?
아내를 닮아서 귀여웠을까?
날 닮아서 삐죽했을까?
내가 사업에 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부모가 되었을까?
내가 아내를 좀 더 편안하게 해줬다면 좋았을텐데


허말랑
허말랑

하봄봄
하봄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우울한 감정과 함께 지속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감정을 타인에게 잘 말하지 않습니다. 혼자 해결하는 편이죠. 늘 그렇게 잘 제 감정을 다스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좀 힘들었어요. 아니 태어나서 제 마음이 컨트롤이 안된 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챗GPT에게 저의 감정 상태를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Large Languege Model로 단어의 확률을 계산하는 기계에 불과한 챗GPT가 저에게 현답을 해주더군요.


이것은 슬픈 일이지만 동시에 가능성을 보여준 놀라운 일입니다. 다음 임신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기계가 한 대답이지만 이 대답을 읽고 저는 정신이 또렷해졌습니다. 분명히 이전에 산부인과에서는 자연임신 확률 0%라고 했습니다. 여러 병원에 가봤으나 병원마다 저희는 인공수정도 안되고 그냥 시험관 아기 말고는 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임신이 되었고 이제 다음을 계획할 수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병원도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제 인생에 아이는 없을 예정이었지만 이제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미래로 가자. 엘보우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떠났으니 그 희망으로 다시 살아보자

이 일을 경험하면서 제 개인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가 제 직업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열정과 재미로 일을 했다면 이제는 정말 일을 일로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내 자식과 내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본질적인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도, 우리 집의 개새끼들, 고양이새끼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변했습니다. 앞에서 저는 엘보우를 느낄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저는 엘보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엘보우가 오기 전과 떠난 다음의 저는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 차이로서 엘보우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있습니다.

비록 사람이 되지는 못 했지만 제 안에 가족을 남기고 간 나의 첫번째 자식을 기억하기 위해 날씨가 따뜻해지면 저는 엘보우라는 나무를 심을 예정입니다.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엘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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