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응급실에 가다

1. 균열#

럭키는 올여름부터 조금씩 예전과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우리가 살짝만 움직여도 벌떡 일어나곤 했는데, 이제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지 우리가 돌아다녀도 세상 모르고 자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낮에도 잠을 더 많이 자고,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마음처럼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었어요.

게다가 얼마 전에 스케일링을 했는데도 입 냄새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고요. 언제까지나 아기 같던 럭키가 어느새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거죠. 저는 장난처럼 럭키 입냄새 맡으면 똥 냄새 난다고 놀리고, 귀가 잘 안 들리니까 이제 나이 먹고 푹 잠을 자는 거라며 오히려 귀여워했어요.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모든 변화가 단순한 노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 특히 저는 ‘럭키가 나이를 먹었으니 자연스러운 변화겠지’라고 넘겼습니다. 럭키는 워낙 튼튼했고 체질도 좋은 아이였으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서서히 늙어가다가 15살은 거뜬히 넘기고,

17살까지도 살겠지…

웰시코기 중에서도 오래 사는 아이가 되겠지…

저는 막연히 그렇게만 믿고 있었어요.

2. 시작#

11월 초, 럭키가 혈뇨를 봤습니다.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오줌 한가운데 작은 붉은 점 하나 정도였어요. 그래도 걱정이 되었고, 늘 다니던 이천의 작은 동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병원엔 선생님이 세 분 정도 계신데, 그중 한 분은 저희가 의도적으로 피하는 분이었습니다. 가장 연세 많은 선생님이신데, 진료를 맡기면 사실상 거의 해주시는 게 없습니다. ‘어? 이 정도는 나도 하겠는데?’ 싶은 순간이 많았고, 그래서 자연스레 피하게 됐죠. 그런데 하필 그날 그분이 계셨어요.

불안한 마음으로 럭키를 맡겼고, 선생님은 염증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 채혈을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채혈을 하는 과정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주사 바늘을 제대로 잡지 못해 피가 잘 안 모이자, 바늘을 뺀 것이 아니라 피부 안에서 계속 돌려 혈관을 찾더군요. 럭키도 아파서 몸을 조금씩 떨었고요. 물론 럭키가 채혈을 잘 받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바늘을 쑤시듯 돌리는 건 말이 안 됐습니다. 사람에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방식이니까요.

저는 화가 나서 순간 소리를 지를 뻔했습니다. 손끝이 얼어붙고 식은땀이 나고 온몸이 떨렸어요. 하지만 럭키 진료가 소홀해질까 두려워 화를 꾹 참았습니다. 결국 반대편 다리에서 다시 채혈을 했고, 바늘을 뽑을 때 피가 터져 나오는 걸 보는데, 마치 제 팔에서 피가 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0~30분 뒤 혈액검사 결과를 들었고, 큰 문제 없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차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빠는 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나 미칠 것 같더라. 진짜 소리 지를 뻔했어.”

집으로 돌아와 잠시 잠들었고, 럭키도 상태가 아주 나쁘진 않아 큰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아내가 저를 깨웠어요.

“오빠, 럭키가 이상해.”

벌떡 일어나 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습니다. 부들부들 떨고 잘 움직이지 못하며 오줌도 못 누고 끙끙대고 있었어요. ‘이건 정말 뭔가 잘못됐다.’ 그런 느낌이 확 왔습니다.

새벽 3시 30분이었고, 우리는 2차 병원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당 해마루는 응급이 꽉 차 있었고, 리더스는 받아줄 순 있지만 초음파 선생님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결국 아까 혈액검사를 했던 동네 병원으로 가자는 결론이 났고…

이것이 이후 가장 큰 후회로 남아버렸습니다.

다행히 야간 응급에 원장님이 계셨습니다. 원장님은 신장 수치가 조금 높긴 하지만 노령견이라면 그 정도는 나온다며 괜찮다고 하셨어요. 그때 본 크레아티닌이 3.3~3.4 정도였던 기억이 납니다. 원장님은 오히려 염증 수치가 높다며 그걸 잡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사를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12월에 다시 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노령견치고 아주 건강하다’는 말을 듣고 돌아온 럭키는, 거짓말처럼 이틀 뒤 한결 나아졌습니다. 저희는 안도하며 “역시 잘 보신다”, “우리 럭키 별일 아니구나”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고…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버렸습니다.

3. 깨져버린 일상#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쯤 지나면서 럭키의 컨디션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주가 되었던 어느 주말, 럭키 상태는 눈에 띄게 나빠졌습니다. 숨이 거칠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어요.

원래 상태를 알고 있는 동네 병원에 가려 했지만, 하필 그날도 우리가 피하는 부원장님이 계신 날이었습니다. 위급한 상황이라 도저히 맡길 수가 없었고, 결국 맞은편의 좀 더 현대식인 24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사람도 많고, 시스템도 더 체계적인 곳이었죠.

그 병원에서 다시 채혈했고, 결과를 들었을 때 제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급성 신부전이 왔고, 신장이 거의 망가졌습니다. 당뇨도 의심됩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다”고 들었던 아이가 신장이 박살났다고요? 당뇨까지? 저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즉시 2차 병원으로 입원해야 한다며, 럭키는 중환자 상태라고 했습니다. 정신없이 분당의 2차 병원으로 이동했고, 가는 동안 럭키가 숨을 멈출까봐 손끝이 얼어붙을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2차 병원에서 다시 검사한 결과는 또 달랐습니다.

“당뇨는 아닙니다. 만성 신부전입니다. 그리고 수치가 많이 좋지 않습니다.”

병원 세 곳의 결과가 다 달랐습니다.

  • 2주 전 A병원에서 3.3이던 크레아티닌은
  • 이천의 B병원에서는 5.5,
  • 2차 병원에서는 4.8

BUN 수치의 경우에는

  • 이천에서 80이라 했는데
  • 실제로는 2차 병원에서는 120이 넘었습니다.

정말 월미도 수산시장 저울도 이보단 정확할 것 같았습니다. 그 동안 진료봤던 병원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화가 나있는 저에게 2차 병원 담당 의사는 럭키는 지금 당장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하고 말했습니다. 럭키는 입원해서 수액 치료와 항생제 치료를 할 예정이고 이를 통해 BUN과 크레아티닌을 낮춰보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알부민 수치가 너무 낮아서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럭키는 병원의 작은 유리 입원실로 들어갔습니다. 럭키를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적막이 흘렀습니다. 집에 돌아와 럭키가 없는 조용한 집안 공기를 느꼈을 때 마음이 묘하게 무너졌습니다. 14년 동안 우리 집을 채우던 럭키의 숨소리, 발소리, 먹는 소리, 오줌 치우는 일… 그게 없다는 게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었거든요.

그렇게, 럭키 견생 14년을 꽉 채우던 11월의 어느 날. 우리의 병원 생활은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도 잔인하게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