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아지를 처음 들인 날#
국민학교 (초등학교의 옛 명칭) 5학년 때 쯤입니다. 대부분 어린이들이 그러하듯 저도 부모님께 강아지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당시 저희 부모님은 반려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것에 결사반대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설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모가 키우던 강아지를 힘들어다며 가져가라 하셨습니다. 품종견은 아니지만 말티즈 비슷한 작고 하얀 강아지였습니다. 이모네 집에 가서 그 강아지를 품에 안았는데 너무나 기뻐했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온 다음, 국딩 하상범은 작고 하얀 이 생명체가 너무 신기하여 이불에 누워 보고 또 보고 만져 보고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스토리가 늘 그러하듯 이 일은 비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날 강아지가 몇 번 배변 실수를 하자 부모님은 다음 날 저녁 강아지를 다시 이모네로 돌려줘야겠다 하셨습니다. 이 역시 클리세지만 저는 울고 또 울며 저항했습니다. 저의 저항운동이 무색하게도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무명의 흰둥이는 그렇게 단 하루만에 반품 처리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강아지하면 그 때 일이 먼저 생각납니다.
그 당시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얼마나 부모님을 원망했던가?
2. 럭키를 처음 만난 날#

제가 럭키를 처음 본 건 럭키가 7살 때였습니다. 럭키는 아내만큼이나 얼굴이 이쁜 강아지였습니다만 어딘가 살짝 맛이 이상한 개였습니다. 처음 만난 럭키는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ADHD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돼지처럼 숨소리는 꽥꽥 거렸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친듯이 짖어대는데 저는 럭키가 광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어준 별칭은,
“안돼"를 모르는 강아지
럭키를 처음 만나고 난 다음, 깨끗했던 집 전체가 엉망 진창이 되었고 저는 이틀 동안 집 청소를 했습니다. 여기저기에 온통 침과 털을 묻혀놔서 물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더러워졌습니다. 저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를 사랑했지만 럭키와 함께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3. 럭키와 함께 살아보자#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는 제 의지와는 다르게, 누렇고 다리가 짧은 웰시코기 한 마리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럭키. 저와 럭키는 그다지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잘 안 맞았지요. 저는 개에게 ‘복종’을 기대했지만, 럭키는 애초에 복종이라는 개념이 없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냥 무서운 형에게 적당히 맞춰주는 척을 할 뿐이었죠. 그렇게 우리는 7년을 보냈습니다. 30대였던 저는 40대가 되었고, 7살이던 럭키는 어느새 15살이 되었습니다. 40대가 된 저보다도, 15살이 된 럭키가 더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엔 반항으로만 가득하던 녀석이 이젠 제 옆에 찰싹 붙어 있고, 가끔은 순순히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마음 한 켠이 축축하게 젖습니다.
작년 11월, 럭키는 크게 아팠습니다. 제 인스타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신부전 진단을 받았지요.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도 럭키는 기적처럼 건강을 거의 완벽하게 회복했습니다. 그게 올해 2월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5월까지의 3개월 동안, 럭키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신장 수치를 제외한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반항하고, 모든 일에 간섭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귀가 터질 만큼 짖어댔습니다. 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침대에도 단숨에 뛰어오르곤 했습니다. 7살 시절의 럭키가 돌아온 것만 같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그저 마음이 평화로웠습니다.
이러다가 20살까지 사는거 아냐?
20살까지 매일 피하수액 놔야해?
안되는데…적당히 살어. 럭키! 알았지?
얼마 전 부모님이 집에 방문하셨는데 럭키 보시더니
몇 년은 거뜬하겠다
4. 럭키의 행복했던 3개월, 그리고 갑작스러운 변화#
럭키는 2월부터 5월까지, 정말 꿈같은 3개월을 보냈습니다. 지난 신부전의 고비를 넘기고 난 뒤였기에, 저희 부부에게는 더욱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5월 22일, 럭키가 갑자기 설사를 하면서 그 행복한 시간은 뜻밖에 막을 내렸습니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받은 결과는 혈관육종. 남은 시간이 한 달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희는 호스피스를 결정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허말랑과 교대로 24시간 럭키 곁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5. 발작, 혼미, 무너지는 몸… 그리고 절망#
진단을 받은 그날 밤, 럭키는 심한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이후에도 한 번 더 발작이 있었고, 혼란스러운 듯 이유 없이 집안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불러도 반응하지 않았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걸음을 떼면 뗄수록 뒷다리 힘이 빠져 푹푹 주저앉았습니다. 밤에는 호흡마저 거칠었습니다.
저희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이렇게 보내는 건가…’ 하는 절망 속에서 럭키를 지켜봤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견디기 힘든 시간>6. 막연한 체념 속에서의 작은 선택, 그리고 기적 같은 변화#
‘죽기 전에 좋아하는 것이라도 먹게 하자.’ 신부전 이후 늘 맛없는 처방식만 먹어야 했던 럭키가 이렇게 가는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있던 바나나우유를 아주 조금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럭키의 정신이 번쩍 돌아오는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닭가슴살을 삶아 급여했습니다.
그 뒤로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지날수록 럭키는 점점 살아났습니다.
걸음이 정확해지고
눈빛이 초롱해지고
체온 정상
호흡 정상
거의 기적처럼 컨디션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7. 혼란: ‘우리가 뭘 놓친 건가?’#
죽음을 받아들였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했더니 상태가 좋아지니까,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습니다.
병원에서 혈관육종이라 했는데 혹시 잘못된 진단이면?
혈관육종이 맞더라도, 지금의 급성 악화는 다른 원인이었던 건 아닐까?
지난 진료 때 설명이 논리적으로 매끄럽지 않았던 것도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의심과 질문, 불안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8. 일주일 뒤,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하다#
그래서 진단 후 7일이 지난 오늘 아침, 저는 그동안의 상황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일어난 사건들, 의문점들, 핵심 쟁점들을 모두 뽑아 정리했고, 그것을 PPT로도 만들었습니다.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견디기 힘든 시간>럭키는 여전히 어느 정도 활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의사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혹시 럭키 말년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생겼습니다. 저녁 7시 30분,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했고, 저는 준비해 간 자료들을 차분히 설명드렸습니다. 선생님은 럭키를 데리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셨고, 저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검사가 끝나고 다시 진료실로 들어가 선생님과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마 오늘이 그동안 수의사 선생님과 가장 깊이, 가장 오래 대화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저는 마침내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9. 현재 럭키의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은 신부전 악화에서 비롯된 것 — 크레아티닌 수치 상승, 약한 빈혈
지난주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은 혈관육종의 미세 출혈 때문이었을 가능성
최근 상태가 다소 안정된 이유는 그 미세 출혈이 멎었기 때문일 가능성
비장에 있는 혈관육종의 크기는 5.9cm
지난주보다 0.9cm 증가
10. 퍼즐이 모두 맞춰졌습니다. 그리고 결론도 분명해졌습니다.#
혈관육종의 성장 속도와 최근의 변화들을 종합하면, 이 종양은 아마 생긴 지 한 달 남짓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즉, 4월까지 럭키가 팔팔했던 것이 맞고, 5월부터 급격히 암세포에 잠식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개의 대사가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현재 럭키의 비장은 이미 종괴에 크게 잠식되어 있습니다. 비장의 원래 크기가 약 10cm인데, 그 중 5.9cm가 종양이라면 실제 내부에서는 부피(cm³) 기준으로 훨씬 더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혈액으로 가득 찬 풍선이 팽창하듯, 언제든지 터질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크고 무거운 종괴는 아마 한 번에 크게 파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럭키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고 짧은 시간 안에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럭키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첫 번째 강아지는 흰둥이일까, 럭키일까?”
당연히 답은 럭키라고 떠올렸지만, 곧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나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 강아지’가 럭키라고 생각한 걸까? 잠시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바로 책임이었습니다. 국민학생이었던 하상범은 흰둥이를 책임진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하상범은 럭키를 책임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감히 ‘나의’라는 소유격을 생명에게 붙이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저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럭키를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을 했습니다. 그 녀석이 살 집을 직접 지어줬고, 무거운 몸을 늘 품에 안아 옮겼고, 똥꼬도 매일 닦아줬고, 아플 때는 병원비를 벌었고, 밤새 잠 한숨 못 자고 간병도 했습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럭키를 책임지고 키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명이 다한 그 녀석을 잘 떠나보내는 마지막 책임까지 다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어렵네요.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지금, 저의 첫 번째 강아지와 이별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