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계속된다

1. 럭키가 떠난 뒤에#

아내는 럭키를 떠나 보내고 집안에 있으면 우울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계속 어딘가 다녔지요. 맛있는거 먹으러도 하고 좋은 경치도 보고 오고 그렇게 밖으로 밖으로 다녔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맛있어서 좋고 좋은 경치를 보면 또 즐겁다보니 럭키를 떠나 보낸 슬픔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슬픔이라는 것이 잠겨 있는게 아니고 마치 과속방지턱을 넘듯이 갑자기 쿵하고 왔다 사라지는 것이더군요.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내던 어느 날 밤, 불꺼진 집에 있는 잔디와 왕왕이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났어요.

나의 첫번째 강아지 럭키

1. 강아지를 처음 들인 날#

국민학교 (초등학교의 옛 명칭) 5학년 때 쯤입니다. 대부분 어린이들이 그러하듯 저도 부모님께 강아지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 당시 저희 부모님은 반려동물을 집에서 키우는 것에 결사반대셨습니다. 그러던 차에 설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모가 키우던 강아지를 힘들어다며 가져가라 하셨습니다. 품종견은 아니지만 말티즈 비슷한 작고 하얀 강아지였습니다. 이모네 집에 가서 그 강아지를 품에 안았는데 너무나 기뻐했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강아지를 집에 데리고 온 다음, 국딩 하상범은 작고 하얀 이 생명체가 너무 신기하여 이불에 누워 보고 또 보고 만져 보고 그렇게 잠을 이루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스토리가 늘 그러하듯 이 일은 비극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다음 날 강아지가 몇 번 배변 실수를 하자 부모님은 다음 날 저녁 강아지를 다시 이모네로 돌려줘야겠다 하셨습니다. 이 역시 클리세지만 저는 울고 또 울며 저항했습니다. 저의 저항운동이 무색하게도 그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무명의 흰둥이는 그렇게 단 하루만에 반품 처리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강아지하면 그 때 일이 먼저 생각납니다.

안녕 럭키

럭키 별이 되다#

5월 20일부터 시작된 투병은 6월 15일 일요일 새벽 3시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는 어제 장례하고 집에 와서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청소를 미친듯이 하고 쓰러져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색하게도 집이 너무 조용합니다. . 건강할땐 럭키가 아침부터 짖어댔고 아플땐 아침부터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저희는 럭키 배변 실수를 치우기 위해 분주했었지요. 적막한 집은 이상하네요.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일요일, 럭키는 조용히 자다가 숨을 거뒀어요. 호스피스를 하는 동안 럭키에 대한 마음 정리가 많이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중간중간 무너져내리고 오열하면서 슬픔도 많이 줄어들었고 럭키를 24시간 간병하는 과정을 통해 죄책감도 많이 덜었어요. 저는 허스피스를 선택한 것이 럭키와 저희 부부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생각합니다. 이 때 아니면 또 언제 셋이 24시간 같이 있겠어요.

럭키 사태 정리 (후편)

1. 한 달만에 병원진료#

검사 결과는 매우 좋았습니다. 신장의 기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사용하는 크레아틴 수치는 2.7까지 내려왔습니다. 2.7이면 신부전 2기에서 3기 정도로 보면 됩니다. 이것은 여전히 럭키는 하루 300ml의 수액을 공급받아야 신장이 정상동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행인 지점은 다른 모든 수치가 정상이고 럭키의 활력 역시 너무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저는 저는 감사하게도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여러 개가 수주가 되어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럭키도 좋아졌고 저도 일이 많다보니 제 기억 속에서는 매일 오늘 밤 럭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연락을 받던 때가 언제인지 흐릿해졌고 면회실에 들어가서 주렁주렁 튜브를 몸에 달고 축 쳐진 럭키를 하염없이 쳐다보던 때가 아주 오래전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럭키 사태 정리 (전편)

1. 현재 상태#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럭키는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했습니다. 현재 잘 먹고 잘 놀고 잘 싸고 있어서 12월 달의 악몽같던 시간이 꿈처럼 느껴집니다. 인스타에 공유드렸듯이 럭키의 마지막 측정 수치는 매우 좋았습니다. 한창 아플 때에는 체액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서 암울한 상태가 검사 결과지에서 극명하게 나타났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체내 균형을 완전히 찾아서 특별한 처치없이 한 달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수치 측정하고 추적관찰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어느 정도 신장은 손상되었습니다>

매일 280~300ml 피하수액

럭키 재검 결과

럭키 재검 결과는 좋았습니다.#

  • bun 108 → 38
  • 크레아틴 5.5 → 4.3
  • 염증 수치 50대 → 20대
  • 빈혈 수치 거의 정상

제가 생각한 것보다 일주일 사이에 훨씬 좋아졌습니다. 이로써 추측해볼 수 있는 건

  • 현재 수액은 체중 당 15ml 정도로 하한선으로 주입 중.
  • 수액량을 늘리면 신장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 크레아틴 수치의 변화를 생각해보면, 럭키의 신장 상태는 아직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라 진행형일 수 있다.
  • 즉 애초에 ackd, ckd 진단은 좀 애매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수액량을 250ml로 1차 증량하고 300ml까지 늘려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재검한 다음 결과를 보고 향후 방향을 결정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럭키의 위기는 넘어가고 있습니다.

럭키는 지금 반쯤 살아났습니다

퇴원 후 럭키 상태는,#

퇴원하고 3일만에 병원에 다시 방문했습니다. 호기롭게 퇴원했지만 사실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괜히 데리고 와서 다잡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게 아닐까 아내랑 논쟁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통원 치료를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럭키가 퇴원하던 날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바람에 며칠 지났는지 제가 직접 세지 않아도 매일 언론에서 카운트를 해주더군요. 어쨌든 3일 동안 수액 없이 집에서 잘 먹고 잘 싸고 잘 지냈는데 수치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제 생각엔 많이 좋아졌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상계엄날 럭키는 퇴원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날#

TV를 보는데 저희 부부에게는 불안이 덮쳤습니다.

혹시나 교통이나 치안에 문제가 생겨서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럭키하고 생이별하게 되는 거 아냐?

뉴스에서 나오는 진행 상황을 보니 점점 더 두려워졌습니다. 수의사 선생님이 내일이나 모레 퇴원하자 하셨는데 하필 오늘 비상계엄을 선포하다니!! 저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정에 병원에 퇴원을 선포하고 분당으로 향했습니다. 병원 관계자들은 많이 놀란 눈치였지만 퇴원 선포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남은 병원비 결재하고 럭키를 데리고 나왔어요.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계엄 당시 상황부터 정리해보면,

공감을 머리로만 알았다 (후회)

몰랐습니다. 이런 기분일 줄은.

제가 2016년부터 인스타를 시작한 이래로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아픈 것을 봐왔습니다.

말랑아. 인스타봤어? OO이 지금 아픈가봐. 큰 일이다

어떻게 하냐. OO이네 지금 많이 힘드시겠다.

네코짱부터 최근에 김쭈까지 하나둘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저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올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과 친구들의 슬픔에 스스로 충분히 공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럭키가 이렇게 사경을 해매보니까 실제는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단 1%도 그 분들의 고통을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인스타에서는 제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글이나 영상, 사진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저의 감정적인 부분이 강조되지만 평소에 저라는 사람은 매우 일관되고 차분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환자 럭키를 반려하는 것은 절대로 일관적일 수도 없고 차분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난 일주일은 회사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과연 저만 그랬을까요. 아마 먼저 아이들을 떠나보내신 인친분들 역시 똑같은 과정을 겪으셨겠지요. 그러나 당시의 저는 하나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깊은 슬픔이었는지 저는 몰랐습니다.

럭키는 7일째 입원 중입니다

1일 차 월요일#

럭키는 입원할 때만해도 그래도 자기 힘으로 움직이고 정신이 있었는데 다음 날 면회 갔을 때 럭키는 하루만에 상태가 매우 안좋았습니다. 면회실에서 만난 럭키는 고문이라도 당한 것처럼 그저 멍하니 땅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럭키의 꼬추에는 카테터가 꽂혀있었고 앞다리에는 수액을 맞고 있었어요. 기분이 참담했습니다.

선생님은 럭키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 BUN 수치가 매우 높다.
    • 혹시나 해서 다시 검사해봤다
    • 처음 입원하실 때 말씀하신 80이 아니라 120이 넘고 있다.
  • 크레아틴 수치 역시 5.3까지 올라갔다.
  • 그리고 알부민 수치가 2.0인데 이거 매우 낮은 것이다.
    • 체내에서 단백질을 다 내보내고 있는 것이다.
  • 게다가 방광염이 있다.
    • 그래서 항생제를 투여했는데 항생제가 잘 안맞는 것 같다.
    • 그래서 한 개만 남기고 다 제거했다.
  • 아무튼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다.
  • 그리고 수액을 맞으면 빈혈이 올 수도 있다.
    • 빈혈이 오면 수혈도 생각하셔야 한다

내가 럭키를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면서 나라는 존재를 유지하기도 힘든 날이었습니다.